화학 기상 증착법 (piCVD) 적용 모식도 / 사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하 KIST) 뇌융합연구단 성혜정 박사팀은 서울대학교 박성준 교수팀과 공동으로 기존 전극 대비 수명을 3배 이상 늘린 유연 뇌전극 코팅 기술을 개발했다고 지난 9월 기준 밝혔다. 이번 연구는 뇌 신호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퇴행성 뇌 질환 연구와 임상 적용의 활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힐 것으로 평가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치매,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 환자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장기적 뇌 신호 관찰과 맞춤형 치료 기술 개발이 필수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삽입형 전극은 삽입 후 한 달 정도 지나면 염증과 흉터 발생으로 신호가 약화돼 장기 연구와 치료 적용에 제약이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유연한 플라스틱 소재를 기반으로 머리카락 굵기 수준의 초박형 전극을 제작하고, 표면에 100㎚ 두께의 특수 고분자 코팅을 적용했다.
이 코팅은 뇌척수액과 접촉하면 팽창하면서 단백질과 면역세포의 부착을 막아 염증과 흉터 생성을 억제한다. 이를 통해 전극과 신경세포 간 안정적 접촉을 유지하며 장기간 신호 기록이 가능해졌다. 또한 전극 자체의 유연성과 코팅의 내구성 덕분에 약물 전달 기능까지 구현할 수 있어 단일 전극으로 다기능적 활용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새로운 전극의 효과를 검증했다. 코팅 전극은 기존 전극 대비 염증 반응을 60% 이상 줄였고, 신경세포 생존율은 85%까지 높였다. 또한 장기간 뇌 신호 측정에서 신호 대 잡음비(Signal-to-Noise Ratio, SNR)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초기 대비 오히려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1주차와 13주차 측정 신호가 동일하게 나타나는 등 장기적 신뢰성을 입증했다.
이번 기술은 퇴행성 뇌 질환 장기 추적 연구뿐만 아니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이하 BCI) 상용화에도 활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심장 스텐트, 인공관절 등 다양한 이식형 의료기기의 안정성과 성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어 산업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연구팀은 향후 재활 모니터링, 정신건강 관리, 뇌 질환 진단 등 다양한 임상·산업 분야에서 적용성을 평가하고, 코팅 기술을 다양한 의료기기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코팅은 광개시제를 이용한 화학 기상 증착법(piCVD)을 활용했다. 저진공 상태에서 단량체와 가교제(HEMA, EGDMA)를 주입하고 UV 광원으로 활성화시켜 고분자를 유연 뇌전극 표면에 합성하는 방식이다. 합성된 고분자는 습윤 환경에서 팽창해 단백질과 면역세포 부착을 억제함으로써 염증을 방지하고 전극 수명을 연장한다.
코팅 유무에 따른 뇌 조직 분석에서, 코팅이 없는 전극은 염증 관련 단백질(GFAP, CD68) 발현이 높게 나타난 반면, 코팅 전극은 이 발현이 크게 억제됐다. 또한 코팅 전극에서는 건강한 뉴런 마커인 NeuN 단백질 발현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KIST 성혜정 박사는 “이번 연구는 기존 전극 수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장기간 안정적인 뇌 신호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서울대학교 박성준 교수는 “새로운 전극 기술은 뇌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신경질환 치료법 개발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하에 KIST 주요사업 및 우수신진연구, 중견연구,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로 수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Biomaterials(IF 12.9, JCR 분야 3.6%)’에 게재됐다.
이번 성과는 장기간 안정적 뇌 신호 측정, 염증 억제, 신경세포 보호 등 다중 효과를 통해 뇌질환 연구와 BCI 산업, 다양한 이식형 의료기기 산업으로의 확산 가능성을 제시하며, 국내외 뇌과학 및 의료기기 분야 연구와 산업 혁신에 핵심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